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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의 기억
Memory of Stone
마지막 모퉁이 돌이 된 ‘광장의 의병’
무너진 성돌을 다시 쌓은 ‘읍성의 동인(동구의 인물)’
돌처럼 단단한 독립의 의지 ‘광주의 학생’
광주읍성, 그 마지막 때 - 흩어진 돌의 기억을 모으다.
4.
26.
Fri
27.
Sat
18:00~22:00
5ㆍ18민주광장, 광주읍성유허, 서석초등학교 일원

동인(東人)

  • 광주동구국가유산
  • 동인(東人)
동인(東人)
시대의 스승
최흥종(催興琮)
1880.05.02. ~ 1966.05.14. 동구 수기옥 출생

1880년 광주 수기옥 153 출생

1904년 유진벨 목사의 집회 참석

1905년 대한제국 광주 경무청 순검

1907년 광주지역 국채보상운동 참여

1912년 광주나병원(봉선리교회) 설립, 광주 북문안교회 장로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에 가담. 1년 4개월 형을 선고받고 투옥

1920년 광주YMCA 창립, 조선노동공제회 광주지회장

1921년 광주 북문밖교회(중앙교회) 설립(광주 최초의 목사)

1926년 광주시민이 광주나병원 철거를 요구하며 항의하자 여수애양원 설립에 전력

1927년 1922년에 이어 시베리아 선교사로 2차 파송. 신간회 광주 지회장

1935년 은거(~1945년)

1944년 광주의학전문학교(전남의대) 설립기금 조성에 큰 기여

1949년 의재 허백련과 삼애학원 설립하여 교장으로 취임

              음성나환자와 결핵환자를 위해 호혜원, 송등원, 무등원 설립

1966년 별세. 광주시민장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한센병 퇴치와 빈민운동에 앞장선 20세 성자 오방(五放) 최흥종(崔興琮
1912년 광주최초의 한센인병원인 ‘광주나병원’을 설립한 이후 평생을 병자와 빈민을 위한 구호사업과 교육활동에 전념하
였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옥고를 치루기도 하였으며 1921년 광주최초의 목사가 되었고, 광주YMCA, 신간
회 등 광주 곳곳의 사회단체에서 활동하였다. 1966년 금식기도에 들어간 최흥종은 같은 해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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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진 출처 인문도시 동구 온라인기록관, “동구의 인물 1”, 광주광역시 동구,(2020), “동구의 인물 2”, 광주광역시 동구,(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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